李和伯
和伯1884. 4. 3 ~ 1968. 2.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8)
관련 사건
- · 영주군 풍기면 풍기시장(4.9)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8) 1884년 4월 3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봉현면(鳳峴面) 대촌동(大村洞, 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직업은 농업이었다.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豊基面) 풍기장터(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같은 마을에 살던 안용호(安容鎬)·최성원(崔盛源)·남영진(南永鎭) 등이 주도한 것이다. 안용호는 과중한 세금 징수 등 일제의 식민 통치에 불만이 컸고,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였다. 그러던 중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풍기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4월 3일 오후 2시, 안용호는 최성원(崔盛源)의 집에서 남영진(南永鎭) 등과 만세운동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시위 장소는 풍기면 성내동(城內洞)의 풍기장터로, 일자는 장날인 4월 9일로 정하였다. 풍기장은 당시 봉현(鳳峴)·순흥(順興)·안정(安定)·단산(丹山)·부석(浮石)·상리(上里, 현 예천군 효자면) 등의 주민이 집결하는 매우 큰 장이었다. 그리고 종이로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만세운동 당일 오후 3시 반, 장꾼이 가장 많이 모이는 쌀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3인의 주도 인물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같은 마을의 주민으로 기꺼이 동참하였고, 100여 명의 군중과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시위대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시위 행렬을 편성하던 3인은 급거 출동한 일제 헌병에 곧바로 붙잡혔다. 헌병이 이들을 풍기주재소로 강제로 끌고 가려는 순간, 이에 항의하여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특히 주재소 입구 동남쪽에서 황정흠(黃鼎欽)·김용준(金容俊)·남상필(南相弼)·황정흠(黃政欽)과 함께 약 50여 명의 시위대를 구성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에 몰려갔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 검거되었다. 일제 헌병에 붙잡힌 후,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