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漢汝
漢汝1890. 9. 14 ~ 1957. 9.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금마면 홍성시장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0년 9월 1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월암리(月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금마면 홍성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홍를 겪었다. 금마면 만세시위는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 주도로 추진되었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민영갑은 이재만과 협의한 후 만세운동 계획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에게 제안하여 적극적인 동의를 받았다. 4월 1일 가산리(佳山里)에 예정된 연극공연을 이용할 계획을 하였다. 공연장소는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할 임시 연극공연장이었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공연에 주민들이 모이면 이때를 기회로 만세운동을 전개할 생각이었다. 민영갑과 이재만 등은 계획대로 연극 관람을 가장하고 이원교의 집으로 가서, 연극이 아직 끝나기 전인 오후 8시 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관객으로 참석한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공감한 수십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연극공연장의 주민들을 해산시켜 귀가하도록 하였다. 다음날인 4월 2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다시 모여 홍성시장으로 가서 제2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홍성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이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만세시위대열에 동참한 다른 주민들과 함께 민영갑·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직후 일제 경찰이 진행한 만세시위 참여자 색출, 검거과정에서 붙잡혀서 조사받았다. 4월 23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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