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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豊基

豊基

1891. 11. 6 ~ 1932.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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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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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南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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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남원군 덕과면
  • · 사매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11월 6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덕과면(德果面) 사율리(沙栗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3일 남원군 덕과면과 사매면(巳梅面)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 덕과면과 사매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는 당시 덕과면장인 이석기(李奭器)와 면서기 조동선(趙東先) 등이 연례행사로 진행되던 식수기념일(植樹紀念日)을 기회로 삼아 계획하였다. 이석기 등은 3월 31일 면사무소에서 구장인 이병규(李秉圭)와 이명원(李明源) 등을 만나 4월 3일 예정된 식수기념일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면장 명의로 각 마을 구장에게 식수기념일에 집집마다 한 사람씩 덕과면 신양리(新陽里) 뒤산인 도화곡(桃花谷)으로 모이라고 통보하였다. 4월 3일 이승순(李承珣) 등과 함께 도화곡으로 가서 식수를 위해 모인 약 8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시위대와 함께 산에서 내려와 마을 아래에 위치한 남원-전주(全州)간 도로를 향해 행진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불렀다. 저녁 무렵 만세 행렬은 사매면 오신리(梧新里)에 위치한 오신헌병주재소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이석기와 조동선 등이 연행되었고, 시위대가 해산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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