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平銖
平銖187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통천군 순령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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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3)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순령면(順嶺面) 하고저리(下庫底里, 현 통천군 통천읍)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42세이므로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순령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5일 순령면 고저리에서는 청년·노동자·학생 등 20여 명 참여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먼저 청년 부두 노동자들이 5일 밤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거리를 행진하자 서당 학생들이 동참하였고, 이어서 다른 노동자들이 합세해 부두와 거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급파된 일제 경찰이 주도자들을 체포하면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튿날인 6일에도 만세시위가 낮부터 시작되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1,300명이 넘는 시위대가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만세시위에는 노동자를 비롯해 상·하고저리 마을의 주민들이 대거 동참하였다. 이때 시위대 선두에 서서 고저리경찰관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 등을 파괴하였고, 이어서 일본인 주택과 중국인 상점까지 공격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고성(高城)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등을 출동시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7일에는 오후 8시경 2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독립만세’를 부르며 거리를 행진하고 면사무소 등의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밤까지 만세시위가 이어지자 일제 경찰이 무력을 행사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7월 15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 삽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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