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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泰甲

泰甲

1883. 9. 3 ~ 196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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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泰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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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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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괴산군 청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3년 9월 3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청안면(淸安面) 금신리(錦新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30일 청안면 청안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9일 괴산면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김수백(金壽伯)·장성원(張聖源)·박순옥(朴巡玉)·함재원(咸在元)·신강면(辛康勉) 등과 비밀리에 모여 청안면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청안장터 장날인 3월 30일을 거사일로 정한 후,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또한 비밀리에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만세시위 참여를 설득하였다. 3월 30일 오후 1시 경부터 동료들과 함께 청안장터 외곽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시위 참여를 호소하였다. 오후 3시 30분경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한 후 2,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장터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유웅렬(劉雄烈) 등 선두에 있던 7명을 주재소로 연행하였다. 그러자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찾아가, 연행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일제 경찰이 총을 발포하며 사람들을 다시 체포하자, 시위대를 이끌고 돌을 던지며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주재소에 진입해 유리창 등 각종 기물을 부쉈다. 하지만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는 과정에서 결국 붙잡혔다. 1919년 7월 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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