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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七星

七星

1872. 6. 20 ~ 194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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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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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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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72년 6월 2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길안면(吉安面) 지례동(知禮洞)에서 태어났다. 이후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고천동(高川洞)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鞭巷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유연성(柳淵成) 등이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며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자, 이에 동조해 인근 주민과 함께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오후 2시 시위가 시작되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를 진압하러 온 경찰이 시위대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분노하여 군중과 함께 경찰을 제압하였다. 기세에 놀란 경찰이 주재소로 달아나자, 5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주재소 앞에 이르러 주재소 안으로 군중이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가 시작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몽둥이와 돌을 들고 주재소로 진입하였다. 책상과 의자, 유리창 등의 기물을 부수고, 장부나 서류 등은 모두 찢어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경찰에게 빼앗은 총검은 주재소 안에 있던 무기와 함께 주재소 뜰에 있는 우물에 버렸다. 주재소를 지붕과 기둥만 남긴 채 완파시킨 후, 1,500여 명의 인파와 함께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까지 초토화시킨 후 이튿날인 3월 22일 새벽 3시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 해산하였다. 그날 오후부터 시작된 경찰의 검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검으로 이감되어,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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