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彩然
彩然1880. 3. 14 ~ 1954. 11.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동군 양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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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0년 3월 14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양산면(陽山面) 가곡리(柯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0일 같은 문중의 이관연(李觀然)·이헌주(李憲周)·이진국(李鎭國)·이상찬(李相瓚) 등과 함께 영동군 양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영동군 학산면(鶴山面)에서 주민 2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학산면 만세시위로부터 자극받은 양산면의 보통학교 학생 이흥연(李興然)·이성주(李聖周)는 큰 글씨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목판을 큰길가에 세워 놓았다. 이 모습을 목격한 일제 경찰에 의해 이흥연·이성주가 붙잡혀 압송되었다. 이 소식이 마을에 전해지자, 3월 30일 이관연·이헌주·이기주(李箕周) 등과 협의하여 이들을 구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이관연 등과 함께 영동-무주 간 도로공사 현장으로 가서 공사에 동원된 동리의 주민들에게 이흥연·이성주 두 학생의 연행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시위 대열을 형성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서산리(鋤山里)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2시경 경찰주재소 앞에 도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이흥연·이성주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일제 경찰은 석방을 거부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시위대를 이끌고 경찰주재소를 공격하였다. 돌을 던져 주재소의 유리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전화기 등 일제 경찰의 집기들을 파괴하고, 이흥연·이성주를 구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았다.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 발동이기 때문에 범죄가 아니므로 제1심과 제2심의 유죄 판결은 위법”이라는 취지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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