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鎬
昌鎬1902. 8. 15 ~ 1931. 3.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광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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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6) 1902년 8월 15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본촌면(本村面) 일곡리(日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낸 이주상(李周庠)의 아들이다. 만세운동 당시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거주하면서, 숭일학교(崇一學校)에 재학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광주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남 광주군으로 전파되었다. 광주지역 만세운동을 계획하던 김철(金鐵) 등과 연락하고 있던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丙浚)으로부터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이에 숭일학교에 함께 다니던 정두범(鄭斗凡)·김철주(金鐵柱)·김성민(金聖敏)·김판철(金判哲) 등과 더불어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다. 3월 9일 무렵 남궁혁(南宮爀)·최정두(崔正斗)·최한영(崔漢泳) 등이 제작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독립가 등을 최병준을 통하여 전달받았다. 3월 10일 오후 2시 30분경 읍내의 작은 장날을 맞아 부동교(不動橋) 아래에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곳에서 숭일학교에 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독립가 등을 사람들에게 배부하면서 만세시위의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부동교를 출발하여 서문통(西門通)·본정통(本町通) 등 광주 읍내의 주요 거점들을 통과하는 동안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오후 5시 일제 기마헌병대가 출동하여 총칼을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체포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해산할 당시 아버지 이주상, 형 이윤호(李允鎬) 등과 함께 일제 헌병에 의해 붙잡혀 신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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