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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瓚儀

瓚儀

1878. 7. 15 ~ 1919.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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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瓚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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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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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괴산군 증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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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8년 7월 15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증평면(曾坪面) 남하리(南下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0일 괴산군 청안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괴산군에서는 1919년 3월 19일 괴산면(槐山面)에서 최초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후 김수백(金壽伯)·이태갑(李泰甲)·장성원(張聖源)·박순옥(朴巡玉)·신강면(辛康勉)·함재원(咸在元) 등 지역 청년들의 주도로 청안장터 만세시위가 준비되었다. 이후 이태갑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받고, 그 취지에 적극 찬성하여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하였다. 3월 30일 오전 청안장터로 향하여 비밀리에 태극기를 받아 품속에 숨겼다. 그날 오후 3시 30분 무렵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민들과 함께 시위 대열을 형성하여 만세를 외치자 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선두에 있던 유웅렬(劉雄烈) 등 7명을 연행하자,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이동하여 “어째서 죄없는 조선인을 너희가 체포하는가? 즉각 석방하라”고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자 시위대는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며 항거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자 현장에서 총탄을 맞고 큰 부상을 입었다. 다음날인 3월 3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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