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重立
重立1882. 5. 1 ~ 1931. 8.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2년 5월 1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은경(銀京)이 있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에서 발생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전개된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의 연합 만세시위는 원곡면 칠곡리(七谷里)의 이유석(李裕奭)과 홍창섭(洪昌燮), 외가천리의 최은식(崔殷植)·이희용(李熙龍)·이근수(李根洙), 내가천리(內伽川里)의 이덕순(李德順), 죽백리(竹栢里)의 이양섭(李陽燮) 등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이 만세운동은 일제가 참여자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하려고 시도할 만큼 매우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연합만세시위는 원곡면에서 시작되었다. 4월 1일 오후, 최은식과 이근수 등으로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받고, 원곡면의 각 마을에서 약 1,000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원곡면사무소 앞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유석·최은식·이양섭 등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 앞에서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유석·홍창섭·최은식 등의 지휘에 따라 가장 먼저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최은식과 함께 주재소에 대한 공격에 참여하였다. 최창용(崔昌鎔)·홍재의(洪在義)·최문섭(崔文燮) 등과 함께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고, 주변의 다른 주민들에게도 경찰주재소 공격을 독려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어 만세시위대가 우편소로 향하자,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우편소를 향에 돌을 던졌다. 양성면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상인 소토 사토요테(外里與手)의 상점과 고리대금업자 다카 히데토모(隆秀知) 집에 대한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 가구들을 파괴하였다. 다음날인 4월 2일 새벽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원곡면으로 돌아와 해산하였다. 일제는 4월 3일 원곡, 양성 지역으로 한국 주둔 일본육군 제79연대 소속 약 30 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색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어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른바 내란죄의 혐의로 고등법원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 6월(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