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煥
鍾煥1890. 3. 10 ~ 1919. 3.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단천군 파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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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0년 3월 10일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신만면(新滿面) 신곡리(新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단천군 파도면(波道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희생되었다. 단천군의 만세운동은 3월 10일 파도면에서 시작되었다. 3월 8일 단천 천도교구장인 염원형(廉元亨), 천도교회 서기인 설운룡(薛雲龍)을 비롯해 천도교인인 최덕복(崔德福)·안성교(安聖敎)·최석곤(崔錫崑) 등은 천도교 교조인 최제우(崔濟愚)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는 3월 10일에 파도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또한 염원형의 지시로 최석곤과 설운룡 등이 만세시위에 사용할 선언서 200장을 등사하였다. 3월 10일 오전 11시 300여 명의 천도교인이 모인 가운데 염원형이 주재하는 최제우 추모 행사가 하서리(下西里)에 위치치한 단천 천도교구실에서 개최되었다. 기도회를 마친 후 염원형은 시위대의 일원으로 행진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등을 전달하고, 시위대를 이끌고 단천면으로 이동하였다. 단천면 시장에서는 염원형·김상갑·최석곤·설운룡·안성교 등이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배포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만세시위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파도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장을 거쳐 남문으로 행진하였다. 그러자 단천헌병분대 소속 헌병들이 주남리(州南里)에서 시위대의 행진을 막으면서 해산을 종용하였다. 최석곤은 결코 헌병의 말을 듣지 말고 끝까지 저항하자고 시위대를 향해서 소리쳤다. 또한 설운룡 외 여러 사람은 시위대가 해산 종용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 헌병이 어떠한 방식으로 해산을 명령하여도,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따르지 말고 대항하라”고 외쳤다. 일제 헌병의 해산 시도에 시위대와 함께 돌을 던지거나 막대를 휘두르며 저항하였다. 또한 일제 헌병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서 돌진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며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염석한(廉錫漢)·염석하(廉錫河) 형제, 하다면(何多面) 출신의 이영호(李永浩), 복귀면(福貴面)의 서봉화(徐鳳化) 등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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