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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弼

鍾弼

1898. 2. 20 ~ 1968.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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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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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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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4)

관련 사건

  • · 1919년 울산군 하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4) 1898년 2월 20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동리(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서산(曙山)이다. 하상면 서리(西里)에 위치한 사립 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를 설립한 이재호(李在琥)의 차남이다. 1919년 4월 4일과 5일 울산군 하상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0년 강제병합으로 일제에게 국권을 완전히 빼앗기자, 마음속으로 일제의 지배를 거부하면서 국권의 회복을 염원하였다. 그리고 평소 자신과 뜻이 같은 청년들과 함께 비밀 청년회를 결성한 후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될 때,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서울에서 유학하다가 귀향한 한명조(韓命祚)와 이영호(李永浩)로부터 서울 만세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모임에 참여한 청년 회원들과 함께 하상면 만세운동을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전개해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였다. 이후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박영하(朴永夏)와 이종근(李鐘根)의 집에서 수차례 모여 거사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였고, 만세시위를 4월 4일 일신학교에 모여서 거행하기로 하였다. 만세시위 주도자들은 거사 성공을 위해서는 일심동체의 혈맹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서로 다짐하면서 단지(斷指)를 실행하고, ‘결사보국(決死報國)’이라고 쓴 혈서를 작성하며 독립에 대한 굳은 의지를 드러내었다. 또한 거사에 필요한 준비물을 갖추기 위해 거사 전날 박영하의 집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 200장을 인쇄하였고, 군중에게 배포할 소형 태극기 약 500장도 제작하였다. 그리고 종이와 명주에 ‘구대한국독립만세(舊大韓國獨立萬歲)’,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라고 크게 쓴 대형 깃발도 제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1919년 4월 4일 아침 청년들과 일신학교로 이동하였고, 오전 9시 경부터 거사 소식을 미리 접한 주민들도 모이기 시작하였다. 주도자들은 일신학교 학생들에게도 거사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오전 11시 40분경 양석룡(楊錫龍)이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높이 올리고 흔들자, 참여한 사람들과 더불어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청년회 학생들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서리(西里)·동리(東里)·남외리(南外里)·산전리(山田里) 등으로 행진하였다. 그러자 인근 주민들 역시 시위 행렬에 가담하면서 시위대는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하상면주재소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울산경찰서의 경찰들과 수비대에 의해 시위대의 행렬은 저지당하였다. 그리고 일제 경찰에게 시위대 중 14명이 붙잡혔고, 시위대도 강제로 해산되었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종욱(李鍾旭)·이문조(李文祚)·이종근 등과 함께 김세진 집으로 피신한 후, 다음날 다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4월 5일 오후 3시경 일신학교 부근에서 다시 모인 주도자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시위대는 8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과 함께 하상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구금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돌을 던지면서 거세게 저항하였다. 하지만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24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1927년에는 하상면에 어민동맹조직을 조직하였고, 울산수리조합 반대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8년 설립된 신간회 울산지회의 임원으로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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