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淪
鍾淪1864. 7. 2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이원군 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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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3) 1864년 7월 21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용산리(龍山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0일 이원군 서면(西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5일 무렵 전국의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가 이원군에 전해졌다. 그날 곡구(谷口)헌병대는 이원군의 천도교와 개신교 인사들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던 독립선언서를 압수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이원군 천도교구장 김병준(金秉濬)은 이도재(李道在)·박승룡(朴承龍)을 비롯해서 이원군 내 인사 15명과 회합을 가졌다. 개신교 신자 박용해(朴龍海)가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회람한 후, 이를 기초로 선언서를 작성하였다. 3월 8일 이도재는 15명의 서명이 담긴 독립선언서 500장을 이원군 천도교구실에서 인쇄하였다. 이도재·김병준·김선태(金璿泰)·박승룡 등은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이원지단(利原支團)을 조직하고, 3월 10일 장날이 열리는 이원군 서면 남문리(南門里)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9일 김병준·공시우·박승룡 등은 사람들을 파견해서 인근 마을에 사는 주민들에게 3월 10일 이원군 서면 남문리의 장터로 모일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0일 11시 30분을 전후로 일어난 이원군 서면의 이원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들과 그날 시장에 모인 군중 800여 명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이원군청, 헌병분견소, 공립보통학교, 이원시장 등이 자리한 서면의 남문리·서문리(西門里) 일대를 돌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원군 서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붙잡힌 뒤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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