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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宗根

宗根

1898. 12. 14 ~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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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宗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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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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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단천군 북두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98년 12월 14일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북두일면(北斗日面) 신덕리(新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22일 북두일면 대신리(大新里)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단천군 북두일면 대신리 만세시위는 임용선(任龍善)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때 김성호(金成浩)·송문일(宋文一)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10일과 11일 양일간에 걸쳐 일어난 단천면 만세시위에서 시위 군중이 일제 헌병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이들의 만행을 규탄하고자 하였다. 이에 3월 22일에 북두일면 대신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거사일인 3월 22일 북두일면의 천도교도와 주민들이 대신리로 모였다. 임용선(任龍善)은 시위 당일 오전 7시에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한 천도교도와 주민들에게 시위의 목적과 당부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먼저 일제 헌병의 해산 명령에 응하지 말고 붙잡히지 않도록 하되 붙잡히는 사람이 있으면 구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방해가 있을 시에는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를 이용해서 헌병을 제압하고 구금된 인사를 석방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12시 40분 무렵 김성호·송문일·황희청(黃熙淸) 등과 함께 500~600여 명의 시위대를 인솔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신리 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함성을 지르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일제 헌병들의 해산 요구를 묵살하고 오히려 헌병과 보조원 6명을 포위하였다. 김성호와 황희청이 일제 헌병을 향해 돌을 던지자 헌병과 보조원이 부상을 당하였다. 그러자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 사격을 가했으며, 헌병의 발포로 시위에 참여한 7명이 사망하고 일부 시위대들이 부상을 입었다. 북두일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2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8월, 벌금 30원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김성호·황희청·송문일·황승오(黃承吾)와 함께 “조선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의해서 행동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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