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正雲
正雲1884. 9. 27 ~ 1960. 12.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양주군 와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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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84년 9월 27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와부면(瓦阜面) 송촌리(松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봉천(李奉千)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양주군 와부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도내 다른 지역보다 더 이른 1919년 3월 13일부터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미금면 만세시위는 군내 다른 면으로 이어져 3월 18일 정점을 찍고 3월 말까지 지속되었다. 3월 14일 와부면(瓦阜面) 송촌리(松村里)의 이정성(李正成)·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模)·김정하(金正夏)는 와부면 일대를 순회하는 대규모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8명과 함께 가장 먼저 와부면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구한국 국기 등을 챙기며 다음날 거사를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5일 이른 아침이 되자 송촌리와 인근 마을에서 1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조안리(鳥安里)를 경유한 시위대는 덕소리(德沼里)에 도착했을 때에 500여 명에 달하였다. 출동한 일제 헌병이 해산을 요구하며 주도자 3명을 체포하였다.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체포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곤봉을 휘두르고 헌병주재소까지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헌병들은 공포를 발사하고 총칼을 휘두르며 65명을 붙잡았다. 무력 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체포v자 가운데 17명이 기소되었다. 이날 시위로 기소된 사람의 숫자는 양주군 만세시위 중에 가장 많은 숫자이다. 1919년 3월 15일 와부면 시위과정에서 붙잡혔다. 그해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여 “조선민족으로서 인도 정의에 입각한 행동”이라며 무죄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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