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84. 10. 26 ~ 1925. 3.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익산군 여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10월 26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여산면(礪山面) 원수리(源水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9일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와 여산리(礪山里) 일대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익산군에서는 1919년 3월 1일~3일까지 천도교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 3월 2일 익산군 황화면(皇華面) 황화정리(皇華亭里) 오덕인(吳德仁)의 집에서 독립선언서를 받은 박영진(朴永鎭)이 여산면 읍내에 선언서 6통을 산포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3월 9일 같은 마을에서 음식점을 하던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박사국(朴士國)·이병석(李秉釋) 등에게 신문에서 본 독립에 관한 기사를 말해주며 함께 만세시위를 거행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박사국에게 두루마리를 주어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박사국·이병석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깃발을 흔들며 여산헌병분견소가 있는 곳까지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