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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載日

載日

1875. 1. 11 ~ 196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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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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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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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양주군 진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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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5년 1월 11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진접면(榛接面) 부평리(富坪里, 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진접면 광릉천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도내 다른 지역보다 빠른 3월 초부터 시위가 일어나 3월 말까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3월 13~14일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 14일 와부면(瓦阜面) 덕소리 만세시위 미수, 15일 와부면 송촌리(松村里), 16일 화도면(和道面) 마석우리 등에서 각각 수백여 명에서 1,000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산발적인 시위로 양주문 각 지역에서 수십여 명이 붙잡히고 시위대가 중상을 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진접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진접면 봉선사(奉先寺) 승려인 이순재(李淳載)·김성숙(金星淑)·강완수(姜完洙)는 서울의 독립선언 소식을 듣고 진접면 부평리(富坪里) 부근에서 주민들과 만세시위를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 명의로 만세시위 소식과 동참을 호소하는 문서를 제작하여 배포하기로 하였다. 3월 29일 저녁, 봉선사 서기실에서 유인물 약 200장을 인쇄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부평리·진벌리(榛伐里) 등 4개 마을에 배포하였다. 이때 부평리 마을을 맡아 유인물을 배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3월 29일 밤에 유인물 1장을 수령하여 3월 31일 광릉천변에서 만세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 문건을 회람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31일이 되자 같은 마을 사람 전순만(全順萬)과 마을을 돌며 주민들을 소집하였다. 동리 사람들과 시위 장소인 광릉천변에 나아가 진접면 각 마을에서 모인 시위대 600여 명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주도자 8명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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