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載榮
載榮1869. 11. 5 ~ 1947. 11.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화천군 상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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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69년 11월 5일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봉오리(峰吾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8일 화천군 상서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봉오리와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그 중에서도 구장(區長) 이창선(李昌善)이 가장 먼저 만세운동을 제의하였다. 3월 27일 마을회의에 모여 박용구(朴容九)·김광필(金光弼)·심경지(沈敬之) 등과 함께 이창선의 제의에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화천읍에서 장이 서는 다음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지역을 나누어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고, 이창선·심경지·이응선(李應善) 등과 함께 봉오리를 맡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8일, 주도자들과 함께 먼저 봉오리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부른 후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후 봉오리와 다목리(多木里)·파포리(巴浦里) 주민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주민들을 이끌고 상서면 사무소로 향하였다. 주도자들과 함께 선두에서 이창선·박용구·김광필이 만든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주민들을 이끌고 봉오리와 파포리 강을 건너 행진하였다. 면사무소 앞에 이른 1,000여 명의 시위대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를 포위하였고, 면장 정종하(鄭鍾夏)와 서기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거부하자 시위대는 이들을 끌어내고 면사무소를 돌과 몽둥이 등으로 파괴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면장과 서기 3명을 시위대 앞에 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장이 서는 화천읍으로 향하였다. 시위대가 행진하는 동안 논미리(論味里)·구운리(九雲里)·신대리(新大里) 등의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점점 더 많아져 2,000여 명을 헤아렸다. 정오 무렵 읍내 가까운 신풍리 앞 주막거리에 도착한 시위대는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에 앞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때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는 화천분견소 헌병과 춘천 수비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급습하였다. 점심을 먹고 있던 시위대는 일제 군경이 쏜 총격을 받고 흩어지기 시작하였으며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때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만세운동도 끝이 나면서 읍내에서 계획된 만세운동은 무산되고 말았다. 현장에서 붙잡혀 1919년 7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마치고 공판에 부쳐졌다. 이후 같은해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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