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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孫

在孫

1886. 2. 20 ~ 195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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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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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원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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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원주군 흥업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2월 20일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흥업면(興京面) 사제리(沙堤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이재손(李再孫)이 있다. 1919년 고향인 사제리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의 독립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또한 원주군의 여러 마을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된 것에 영향을 받아 마을 사람들과 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되었다. 4월 8일 같은 마을에 사는 원현복(元顯福)의 집에 윤산악(尹山岳)·원성규(元成圭) 등과 모여 다음날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주도자들과 함께 서당 훈도(訓導) 김상익(金商翼)에게 “4월 9일 아침 마을 앞 광장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자”는 선전문(宣傳文)을 작성하게 하고 이를 여러 장 만들었다. 윤산악·원성규와 함께 작성된 선전문을 가슴에 품고 김성관(金聖寬)의 집을 비롯한 사제리의 20여 가구에 교부하였다. 또한 이웃마을 대안리(大安里)와 매지리(梅芝里) 등에도 배부하면서 이튿날에 있을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다. 그러나 비밀리에 선전문을 배부하던 시위 주도자들의 활동이 일제의 감시망에 포착되면서 주도자들과 함께 거사 하루 전에 붙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흥업면의 만세운동은 무사히 펼쳐졌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6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며 “자신의 행위는 조선 민족의 독립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해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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