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在善

在善

1887. 6. 13 ~ 1937. 3. 2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在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금산(錦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옥천군 이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7년 6월 13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남 금산군) 군북면(郡北面) 보광리(寶光里)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7일 충북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원면에서 만세시위는 고종의 장례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그곳에서의 만세시위를 목격한 수묵동(水墨洞) 마을 사람 허상기(許相基)·허상구(許相球) 형제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같은 마을에 사는 육창주(陸昌柱)·김용이(金龍伊) 등과 거사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허상기의 집에서 태극기 100여 장을 만든 뒤 3월 27일 이원면 장터에 나아가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시내를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때 장터에 모였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가 계속되던 중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허상기 등의 주도자가 체포, 연행되자 시위 군중은 다시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가해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이일만(李一萬)이 동생의 시신을 짊어지고 주재소로 가서 거세게 항의하였고, 이를 지켜본 다른 군중 역시 크게 분노하여 주재소에 쳐들어가 유리창과 집기를 부수고 구속된 사람들을 일부 구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주재소의 창문을 깨뜨리고 구속된 사람들을 깨진 창문을 통해 구출하는 과정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러나 이를 다시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들에 의해 추가로 발포가 이루어지면서 시위 군중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해산되었고, 이때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8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살인미수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