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載萬
載萬1886. 2. 10 ~ 1943. 10.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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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6년 2월 10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봉서리(鳳棲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號)는 덕산(德山)이다. 1919년 4월 민영갑(閔永甲)·최중삼(崔仲三) 등과 함께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판결문에는 농업에 종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최중삼의 3녀의 증언에 따르면 서울을 오가며 약재를 판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세운동을 함께 계획한 최중삼과 민영갑은 모두 한학을 수학한 동시에 산약(山藥)을 취급하던 인물들이었다. 직업상 서울을 왕래하면서 서울의 소식을 홍성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고 4월 1일 금마면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임시로 연극 공연장이 설치되자 민영갑과 협의하여 공연장의 군중을 독려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최중삼·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에게 연락하여 함께 거사를 일으키기로 했는데, 이때 자신의 약재 가방 아래 비밀서류를 숨겨 전달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경 연극 공연이 진행되는 중에 조한원의 선창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연극 공연장에 모인 2~30명의 인파와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이렇게 시작된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인근 지역에 영향을 주어 4월 6일까지 홍성군 곳곳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공주로 끌려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불복하고 “우리나라가 자주독립한다고 말하는데 어찌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가. 본국이 자주독립한다고 해서 손뼉치고 일어나 만세를 불렀는데 국민의 충의심이라는 사실을 묻지 않고 죄인이라 논죄하고 핍박함이 이와 같다”는 취지로 상고하였다. 그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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