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熙南
熙南1925. 12. 16 ~ 2008. 6.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재경유학생동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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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925년 12월 16일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난곡면(蘭谷面) 동사동(東沙洞)에서 이학채(李學采)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 말기에는 죽원희(竹原熙)·죽원홍(竹原弘)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1938년 국곡(菊谷)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9년 4월 철원남공립심상소학교 고등과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1941년 4월 서울 경성공립직업학교 광산과 1학년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이던 같은 해 6월경 동창생 국중일(菊重日)을 통해 민족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7월경 국중일이 소학교 동창생 4명으로 조직한 재경유학생동맹(在京留學生同盟)에 가입하였다. 이를 ‘경성유학 5인조’라고도 한다. 이 모임을 통해 매주 일요일마다 회합을 갖고, 수십 차례에 걸쳐 총독정치를 비판하고 항일독립투쟁 방법을 협의하여 신사참배 반대와 내선일체(內鮮一體) 반대 등의 항일투쟁을 펼쳤다. 또한 한국 역사가 모두 한글 또는 한문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일본어만 교육받아 한글을 알지 못해 쉽게 읽기 어렵다며, 이를 깨우쳐 한국 역사를 연구하여 민족의식을 앙양시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일제가 ‘조선어 과목’을 소학교에서도 없앤다는 사실을 우려하였다. 결국 한국인으로 하여금 ‘조선성(朝鮮性)’을 망각시키고 일본인화 하려는 획책이라 비판하면서, “조선인이라는 정신을 확실히 하고 조선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한국어 연구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한국을 잊지 말고 독립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매진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이 일로 1942년 1월 14일 용산경찰서에 붙잡혔고, 그 해 5월 8일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43년 2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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