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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重華

重華

1881. 9. 2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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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重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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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어학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조선어학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1년 9월 26일 서울 중부 징청방(澄淸坊) 두석동(豆錫洞, 현 종로구 종로 1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용주(李容疇)와 어머니 송씨(宋氏) 사이에 3남 중 2남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동운(東芸)이다. 1899년 9월 민영환(閔泳煥)이 설립한 흥화학교 영어과에 입학, 남궁억(南宮檍)으로부터 영어를 배웠고, 1903년 6월 졸업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모교 강사로 발탁되었고, 1905년 6월 총교사(總敎師)로 승진하였다. 1910년 11월 배재학당에 조선어와 역사지리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 당시 주시경(周時經)과 함께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역사와 문화에도 밝아 1915년 잡지 『공도(公道)』에 서울의 역사와 주요 명소의 연혁을 개관하여 기고했던 기고문 「경성기략(京城記略)」을 개고·보완하여 1918년 11월에 단행본 『경성기략』으로 펴냈다. 1919년 3월 배재학당 기숙사에서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한 선전문을 인쇄하여 돌리고, 세브란스 병원 맨 위층에서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외국인 집에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김진호(金鎭浩)·강매(姜邁)·김성호(金成鎬) 등 교사 4인과 학생 대표 김병호(金秉鎬) 등 18명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을 때 모진 조사를 당하고 옥고를 겪었다. 1922년 신라역사문화답사기인 『경주기행』을 출간하였다. 1929년 10월 조선궁술연구회의 부탁을 받고서 『조선의 궁술』을 지어 조선 무예사를 통한 민족의식 고양에 일조하였다. 1931년 1월 6일 조선어사전편찬회 위원회(회장 이우식, 간사장 이극로)에서 신명균(申明均)·최현배(崔鉉培)·이윤재(李允宰)와 함께 간사로 선정되었다. 1935년까지 배재고보 학감, 부교장을 역임하고 6월 8일 17년 근속 공로 표창을 받았다. 1936년 4월부터 1942년 9월까지 조선어사전편찬 전임위원으로서 제도어와 음식 용어 풀이 부문을 맡았다. 1936년 7월 30일부터 3일간 인천(仁川) 제1공립보통학교 강당에서 개최된 조선어표준말사정위원회 전체회의(제3독회)에 참여하고 표준어제정 수정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이극로(李克魯)·이우식(李祐植·鄭寅承) 등 10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함남 홍원(洪原)경찰서로 압송되었다가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1월 1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고 3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광복 후 1945년 9월 8일 조선어학회에서 『큰사전』 편찬원 겸 간사를 맡고, 1948년 한글학회에서 재단법인 설립시 자신의 토지 9,962평을 기증하였고 1949년 3월 24일에 재단법인 한글집이 설립되자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48년부터 국학대학장으로 지내던 중, 1950년 7월 24일 납북된 뒤 행방불명되었다. 대표 저서로 『경성기략』(1918), 『경주기행』(1922), 『조선의 궁술』(1929) 3권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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