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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正圭

正圭

1892. 12. 30 ~ 1958.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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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正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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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청양군 운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92년 12월 3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모곡리(茅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선이(李善伊)를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청양군 운곡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운곡면은 1919년 청양군 내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계획된 곳이었다. 먼저 4월 3일 운곡면 미량리(美良里)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를 사전에 탐지한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4월 5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몰래 입수해 온 홍범섭(洪梵燮)의 주도로 정산면(定山面) 서정리(西亭里) 시장에서 청양의 첫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날 권흥규(權興圭)가 헌병의 발포로 사망하였다. 이에 다음 날인 4월 6일 권흥규의 시신이 운구되는 과정에서 청양군의 시위가 격화되었다. 이날 운곡면 신대리(新垈里)에서는 면민 600여 명이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고, 4월 8일에도 운곡면과 비봉면(飛鳳面)의 면민들이 함께 횃불만세시위를 벌였다. 운곡면에서 벌어진 4월 6일 또는 8일의 시위 중에 붙잡혀 1919년 4월 21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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