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熙
昌熙1911. 12. 21 ~ 1959. 9.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영암낭남학원
- · 영암농민조합
- · 여수적색노동조합
- · 조선공산당재건전남연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911년 12월 21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영암읍(靈巖邑) 망호리(望湖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창의(李昌儀)·강만수(姜萬洙)·강재동(姜才童) 등을 사용하였다. 중류의 농가에서 자랐으며, 1928년 3월 영암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4월 광주도립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 5월 1일 2학년에 재학 중 퇴학당하였다. 이후 1931년 7월까지 사립학원의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9월에는 영암농회(靈巖農會)의 임시고원(臨時雇員)으로 일하였다. 또한 9월 15일에 영암청년회에서 설립한 영암낭남학원(靈巖朗南學院)의 이사로 선정되었다. 영암 지역 청년운동·노동운동 등에 관계하였던 최판옥(崔判玉)의 영향을 받았으며, 영암농민조합 조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1년 11월 최판옥이 기초·작성한 영암농민조합 창립준비회 규약을 함께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낭남학원에 비치된 등사판 인쇄기를 사용해서 100부를 인쇄하였다. 이 사건으로 붙잡혀서 1932년 2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출반법 위반으로 벌금 20원을 받았다. 1932년 이후 여수(麗水) 지역 운동가들과 연결되어 적색노동조합 조직운동에 참여하였다. 같은 영암군 출신 문석(文錫)이 먼저 다리를 놓았고, 1932년 7월 여수읍 덕충리(德忠里) 졸도(猝島)에서 함께 회합을 갖고 코민테른 「12월테제」와 프로핀테른 「9월테제」 등에 기초하여 노동대중의 교양을 통한 산업별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부서 분담을 할 때 정미노동부(精米勞動部)를 담당하였다. 1933년 5월 이후 전남 지역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재건전남동맹이 조직되자 관계하였다. 이 조직의 반제부(反帝部)·재정부(財政部) 등을 맡고 기관지 『적기(赤旗)』를 담당한 정충조(鄭忠朝)가 창간 준비호를 발간하자 영암에 체류하던 7월 즈음에 이를 받아보았다. 1933년 7월부터 7개월 동안 전라남도 경찰부 고등과와 여수경찰서가 합동으로 조선공산당재건전남동맹과 여수적색노동조합 관계자 체포에 나설 때 붙잡혀 광주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35년 5월 28일 예심이 종결되었으나, 1936년 6월 29일에서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 날인 6월 30일 풀려났다. 광복 직후 영암 지역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형열⋮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