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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泰

鍾泰

1916. 5. 20 ~ 200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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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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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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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심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왕산 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6년 5월 20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용성면(龍城面) 내촌리(內村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창씨명은 암본종태(岩本鍾泰)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가 징용·징병 등 한국인 청년들을 강제로 동원하자, 1944년 7월 경산군 남산면(南山面) 일대 청년 29명의 일원으로 대왕산(大王山)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죽창으로 무장하여 일제 경찰에 맞섰다는 점에서 ‘대왕산 죽창의거’라고 불린다. 1944년 7월 5일, 8일, 15일 세 차례에 걸쳐 항일투쟁을 논의한 이들은 제3차 회의에서 경사가 가파르고 옛 성터가 남아있는 남산면 소재 해발 641m의 대왕산을 최적지로 선정하였다. 7월 26일 입산을 시작하여 요새를 구축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먼저 이들은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조직의 이름을 결심대(決心隊)라고 정하였다. 대장은 안창률(安昌律)이 맡았으며, 1소대장 성상룡(成相龍), 2소대장 배상연(裵相淵), 3소대장 최외문(崔外文) 휘하의 3개 소대와 정보연락대장 박재달(朴在達) 및 헌병 등으로 조직을 편성하였다. 이때 제3소대 소대원으로 배속되었다. 결심대는 당시 신축 중이던 주재소 파괴를 1차 목표로 삼고 세부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어 마을에 있는 가족들을 통해 회유하는 한편, 총을 쏘며 하산하라고 위협하였다. 7월 27일 경방단과 자인면(玆仁面) 및 남산면 주재소 일제 경찰들이 올라오자, 돌을 던지고 바위를 굴리며 항일투석전을 벌여 물리쳤다. 회유에 실패한 일제 경찰은 8월 1일 오전 11시경 다시 올라왔으나, 결심대원들은 죽창을 들고 돌을 던지며 항쟁하였다. 이러한 탄압으로 결심대원들은 1944년 8월 4일 인근에 위치한 용산(龍山)으로 근거지를 옮겼으나, 일제 경찰은 8월 5일 오후 2시경 다시 습격하여 세 번째 투석전이 벌어졌다. 이렇게 저항을 이어가던 중 식량 부족으로 8월 9일 하산하였다가 10일에서 13일 사이 전원 붙잡혔다. 이른바 보안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산경찰서에 약 50일 유치되었다. 1944년 10월 4~5일 사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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