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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仁淳

仁淳

1883. 4. 2 ~ 194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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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仁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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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3년 4월 2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홍성군 금마면 홍성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부터 연속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1일 이후 주요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금마면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은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 등과 협의하여 금마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이들은 4월 1일로 예정된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의 주민 대상 연극 공연을 기회로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 공연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할 기회를 탐색하였다. 이들은 오후 8시 공연장 안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에 공감한 30여 명의 주민들이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동참함에 따라, 연극공연장은 곧바로 만세시위장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이날의 시위는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동인물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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