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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仁秀

仁秀

1855. 1. 1 ~ 193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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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仁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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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55년 1월 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19일 영덕군 창수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창수면 주민들은 인접한 영해면(寧海面)의 시위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9일 이종구(李鐘龜)를 비롯한 창수면 오촌동(梧村洞)과 삼계동(三溪洞) 주민들은 영해면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신기동(新基洞)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신기동 주민들을 만나 협의한 끝에, 영해면으로 가는 것은 이미 늦었으니 중지하고, 창수면에서 사람들을 모아 시위대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위대의 목표는 창수동에 있는 창수주재소였으며, 이현설 등은 동네 집집마다 다니면서 만세운동에 참여할 사람들을 결집하였다. 이때 창수동 마을 구장인 이수각(李壽珏)과 그의 아들 이학술(李學述)의 권유를 받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함께 행진하였다. 오후 4시 창수주재소 앞에 집결한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무기를 이용하거나 돌을 던져 주재소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선두에 서서 주재소를 공격하고, 내부에 있던 의류와 기물을 파손하였다. 시위대의 공격으로 주재소 건물은 거의 파괴되었고, 각종 기물과 공문서 또한 훼손되었다. 만세시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으로 판단한 시위대는 자진하여 해산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고 결국 붙잡혔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공무집행방해죄, 건조물손괴죄,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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