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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琯

在琯

1887. 12. 5 ~ 197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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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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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원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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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원주군 부론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7년 12월 5일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부론면(富論面) 손곡리(蓀谷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1일 원주군 부론면 손곡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 만세시위는 노림리(魯林里)와 법천리(法泉里)에 이어 부론면에서 일어난 세 번째 만세운동이며, 원주군에서 일어난 마지막 만세시위였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1919년 3월 27일 노림리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만세시위가 일어나 항일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당시 서당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을 지지하였고, 전국의 만세운동에 동조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던 김복기(金福基)·정완용(鄭完用)·이은교(李殷敎)와 만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거사 당일인 4월 11일 밤, 김복기·정완용·이은교와 함께 마을 주민들을 찾아가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들의 적극적인 설득에 수십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뜻을 모았다. 주민들이 모이자 김복기와 정완용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대와 함께 손에 횃불을 들고 마을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밤늦게까지 군중을 이끌고 시위를 펼친 후,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일본이 만세운동 관련자를 검거하면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경성감옥에 투옥되어 옥고를 겪던 중, 그 해 9월 27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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