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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章玉

章玉

1893. 10. 22 ~ 1926.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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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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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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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밀양군 단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93년 10월 22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고성면(固城面) 교사리(校社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기수(李其水)이다. 밀양(密陽) 표충사(表忠寺)의 승려로서, 1919년 4월 4일 경남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태룡리(台龍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인근 지역인 양산(梁山)에서는 한용운(韓龍雲)의 지시로 불교계 고등교육기관인 중앙학림(中央學林) 학생들이 귀향하여 사찰의 승려와 함께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그 결과 1919년 3월 5일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승려들과 지방학림 학생들이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나, 관련자들이 일제의 검속으로 3월 7일 체포되었다. 이후 3월 20일 통도사 소속 승려 5명이 밀양의 표충사를 방문해서 만세시위를 추진할 것을 제안하였다. 표충사 소속의 승려로서 오학성(吳學成)·손영식(孫永植) 등과 함께 모임에 참석하였으며, 태룡리에서 장날이 서고 표충사에서 제향하는 사명대사(泗溟大師)의 춘향일(春享⽇)이 열리는 4월 4일에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표충사 승려들과 함께 통도사 승려들이 건네 준 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표충사 법무계의 책임자로서 법무계 서기인 김종석⾦(鍾碩)에게 「선서」라는 제목의 만세시위 취지서 수백 장을 등사하도록 하였다. 「선서」에는 “조선 민족대표 손병희·김병조·한용운·백용성 외 29인의 선언에 의하여 우리들은 조선을 위해 생명을 희생하기로 맹세한다. 이를 위해 우리 2천만 민족은 사람마다 만세로써 품고 있는 신의군(信義軍)을 길러 인도(人道)의 방패와 창으로써 위 여러분의 최후의 신탁을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거사 당일인 4월 4일 오후 12시 30분 무렵 태룡리시장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표충사 승려들과 함께 일반인 복장을 하고 장터로 향하였다. 승려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라는 글귀가 있는 깃발을 시장 중앙에 세웠으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제를 규탄하는 연설을 한 후 독립만세를 외치자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1,5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를 이끌고 헌병주재소로 몰려갔으며, 시위대 일부는 헌병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급파된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으며,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후 태룡리장터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12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선서」를 인쇄한 혐의를 포함해서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다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김성흡(金性洽)과 함께 상고하였으나, 1920년 2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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