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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寅夏

寅夏

1890. 4. 4 ~ 1966.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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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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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龍仁)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용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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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용인군 원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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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4월 4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孟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은표(李殷杓)·이용환(李容煥) 등과 함께 용인군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난 1919년 3월 21일 원삼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용인 지역에서는 3월 21일 원삼면에서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계기로 만세시위는 용인 전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일제의 무력탄압에 대한 반발 속에 원삼면에서는 3월 31일 새로운 만세시위가 준비되었다. 만세시위가 확산되면서 용인에서는 희생자의 숫자도 늘어갔고, 주민들은 그러한 소식을 접하면서 일제 경찰 및 헌병대에 대한 분노와 독립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에는 무려 3,000여 명 규모의 시위대가 형성되었는데, 이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외사면(外四面, 현 백암면)에 위치한 일제 헌병대의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일제 헌병대는 곧바로 무장을 갖추고 출동하였다. 만세시위대는 원삼면과 외사면의 경계를 이루는 비두리고개(현 백암면 근창리)에 이르렀다. 백암(白岩)의 헌병분견소와 용인의 헌병대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대가 잠복하고 있다가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발포를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여러 주민이 일제 헌병의 흉탄에 사망하여 현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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