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潤成
潤成186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장단군 장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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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장도면(長道面) 중리(中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2세이므로 186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30일 장도면 중리와 31일 고읍리(古邑里)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경기도 장단군에서는 3월 23일 진남면(津南面)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각 면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었다. 3월 25일 밤에는 장도면 중리 청암동(靑岩洞)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청암동장으로 음식점과 고물상을 운영하던 이병성(李炳星)은 3월 25일부터 마을 사람들을 규합해, 30일까지 중리 반룡산(蟠龍山)에 올라 불을 피워놓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택신은 3월 28일과 29일 중리 태학산(太鶴山)에서 주민 수십 명과 함께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처럼 다른 마을에서 만세운동이 확산되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3월 30일 오후 7시경 마을사람을 이끌고 신촌동(新村洞) 뒤 동산(東山)으로 올라가 횃불을 피워 놓고 독립만세를 반복해서 크게 외쳤다. 다음날인 31일이 되자 이병성의 주도로 약 200명의 주민들과 함께 고읍리 장도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이병성이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마을로 들어오자 이웃에 사는 임순경(林順景)에게 주민 모두 면사무소로 오도록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중리의 신촌(新村)·냉정(冷井)과 상리(上里)의 서두정(西頭井) 등을 거쳐 오후 1시경 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이병성의 선창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면사무소 문기둥에 세웠다. 시위대는 면장 윤좌영(尹佐榮)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하고, 일본국기를 가지고 나오라고 요구한 뒤 이를 받아서 태워버렸다. 시위대는 “오늘부터 면 사무를 집행하거나 태극기를 제거한다면 면사무소를 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오후 6시경 떠났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6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정의 인도에 기초한 행동이므로 무죄”라며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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