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允甲

允甲

1890. 11. 24 ~ 1951. 1. 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允甲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남 이원(利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이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이원군 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0년 11월 24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대오리(大吾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0일 이원군 서면 이원 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원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 이원군 천도교구장 김병준(金秉濬)에게 기독교 신자 박용해(朴龍海)가 가져온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시작되었다. 김병준은 이도재(李道在) 등과 독립선언서를 원본으로 삼아 인쇄하여 이원 읍내에 배포하기로 결정하고, 8일 천도교구실에서 약 500매를 등사하였다. 그리고 9일 김병준·박승룡(朴承龍)·공시우(孔時祐) 등이 읍내와 인근 마을 천도교도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하였다. 3월 10일 오전 11시 30분경 이원 읍내에서 이도재 등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조선민족독립단’ 깃발을 흔들며 천도교도 등 약 800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박승룡·염처학(廉處學)·조창서(趙昌瑞)·김선태(金璿泰) 등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읍내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45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면서, “3월 10일 이원읍 만세시위는 첫째, 난폭 무질서한 행위를 피하고 안녕질서를 엄수하였으며, 어떠한 범법적 행동을 한 일이 없다. 둘째, 민족적 양심에서 자연적으로 나온 것이고, 셋째,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은 강화 원칙 14개조를 승인하였으므로 그 제5조의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한 자신의 행위는 정당하다”라며 무죄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해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