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有弘
有弘1890. 10. 1 ~ 1919. 5.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구항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90년 10월 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구항면(龜項面) 황곡리(篁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7일 구항면 황곡리 월산(月山)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홍성군 광천면(廣川面) 일대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지만, 광천경찰관주재소에서 이를 발견해 제거하면서 만세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3월 16일에서 18일까지 이명종(李鳴鍾)의 주도로 등사된 독립선언서가 여러 곳에 배포되었다. 4월 1일에는 금마면(金馬面)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이후 4월 9일까지 홍성군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4월 4일에는 홍북면(洪北面)·홍주면(洪州面)·홍동면(洪東面)의 24개 촌락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전개되면서, 홍성군의 만세운동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봉화만세시위는 구항면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4월 5일 광천면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하였지만, 사전에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좌절되었다. 하지만 광천면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후 만세시위가 계속해서 전개되었다. 4월 7일 밤 구항면 황곡리에서 이길성(李吉性)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펼쳐졌다. 이때 이길성의 뜻에 공감하며 황문수(黃文秀)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마을 사람들을 모아 월산(일월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높이 달고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모닥불을 피우고 봉화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결처분으로 받은 태형의 여독으로 1919년 5월 2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