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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郁性

郁性

1859. 9. 2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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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郁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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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北靑)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북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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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북청군 노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59년 9월 26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평산면(坪山面) 서도리(西島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직업은 농업이었고, 종교는 천도교였다. 3월 11일 북청군 노덕면(老德面)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함경남도 북청군에서는 1919년 3월 8일 노덕면(老德面) 내리(內里)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이후 북청군에서는 김용완(金溶玩) 등이 독립선언서 배포를 주도하며 만세운동 참가를 권유하였다. 김용완은 3월 8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한당리(閑堂里) 정기옥(鄭基玉) 집에서 최병운(崔炳運)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00장을 받았다. 9일에 한병택(韓秉澤)에게 약 50장, 10일 김재식(金在植)·김서룡(金瑞龍)에게 약 50장을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북청면, 덕성면 주의동리·서장내리, 하거서면 장자동리 등에 선언서를 배포하였고, 11일 북청면 시위 참가를 권유하였다. 한편 3월 10일 북청 천도교구실에서 교구장 김태종(金泰種)은 한명길(韓明吉)에게 군내 천도교도들에게 3월 11일 시위 계획을 전달하도록 하였다. 사전에 만세운동 움직임을 파악한 일본 헌병들은 3월 11일 김태종을 미리 검거하고 북청의 남문·북문·서문을 봉쇄하여 면민과 외부 군민들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계획대로 북청천도교구실에 모인 천도교도들은 북청면내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북청헌병분대(北靑憲兵分隊) 헌병들은 이들을 차단하였고, 시위 군중은 남문과 서문 밖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북청면에서는 천도교도와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50~60명의 군중이 모였다. 풍산군(豊山郡) 풍산면(豊山面)에서 말에 곡식을 실어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시위가 발생한 것을 보고 참여하였다. 다른 시위대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읍내를 돌아다녔다. 이날 시위로 북청헌병분대(北靑憲兵分隊)에 붙잡혔다. 이후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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