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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煥

龍煥

1899. 1. 19 ~ 1946.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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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龍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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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청도군 운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99년 1월 19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 공암동(孔岩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운문면 면사무소에서 서기(書記)로 재직하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청도군 운문면 만세운동은 사립학교인 문명학교(文明學校) 출신의 교사, 학생, 졸업생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문명학교 졸업생인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는 서울에 갔다가 직접 만세시위를 경험하였다. 이들이 돌아와 만세운동 소식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운문면의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3월 15일 손기현(孫琪鉉)과 김재화 (金在華)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격려하는 격문 20장을 작성하여 운문면 각지에 부착하여 독립 운동의 의지를 고취시켰다. 3월 15일의 벽보 사건으로 인해 김진효(金鎭孝)·손한조(孫漢祚) 등 약 8명의 청년들은 3월 18일, 대천동(大川洞) 운문주재소(雲門駐在所)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풀려난 청년들은 당장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하고 운문면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에 도착하자, 김종태는 가지고 있던 명주 수건에 ‘대(大)’자를 써넣었다. 이어서 김진효가 면서기 4인에게 ‘한(韓)’, ‘독(獨)’, ‘립(立)’, ‘만(萬)’을 한 자씩 쓰게끔 하였다. 이용환도 이때 수건에 글자를 써넣었다. 시위 주도자들에 의해 깃발이 완성되자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를 나섰다. 김진효 등의 선창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행렬은 뒤이어 운문면 면장 이영호(李永浩)의 집으로 향하였다. 면장 이영호는 시위를 만류하였으나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그곳에서 순사로부터 제지당하여 다시 면사무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 9시에 공암동 강가에 있는 정자에서 윤병림(尹炳林)·김문근(金文根)·최성희(崔聖熙)·박영묵(朴永黙) 등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소년활동’이란 창가를 불렀다. 김문근이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다함께 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일제는 대구(大邱) 헌병대와 청도경찰서는 운문면 만세시위 주도 인물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인원을 파견하여 수사를 실시하였다. 이때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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