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莊圭
莊圭1895. 1. 3 ~ 1964. 12.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보령군 주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5년 1월 3일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주산면(珠山面) 증산리(甑山里)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7일 보령군 주산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주산면 만세운동은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培栽高等普通學校)의 학생이었던 이종연(李鍾淵·李哲源)이 귀향하여 주도하였다. 지역의 유림(儒林)과 함께 만세운동 계획을 도모하려는 이종연에게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전달받으면서 주산면의 만세시위 계획을 제안을 받아 참여하게 되었다. 박윤화(朴奫和)·이철규(李哲圭)·임문호(任文鎬)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논의 과정에서 거사일로 결정한 날짜는 장날인 1919년 4월 16일이었으나, 이 계획은 사전에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좌절되었다. 이에 동지들과 함께 다시 협의하여 만세운동의 거사일과 형식을 변경하였다. 4월 17일 밤 이종연 등 동지들과 함께 증산리의 주렴산(珠簾山)으로 올랐다. 이들은 국사봉(國師峰) 위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국사봉 한가운데에 세운 태극기 아래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징을 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주렴산에서 울리는 징소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의 구호를 듣고, 이에 공감한 주변의 마을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종연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열을 갖추고, 약 2km 떨어진 웅천(熊川) 읍내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이종연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만세시위의 발생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들은 만세시위대가 웅천 읍내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며, 만세시위의 주도 인물들을 검거하였는데, 이때 이종연 등 동지들과 함께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보령경찰서로 연행되어 일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1919년 4월 20일 즉결심판에서 주산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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