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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益熙

益熙

1898. 2. 24 ~ 196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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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益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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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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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안동군 풍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898년 2월 2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산면(豊山面) 마애동(麻厓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풍산면 풍산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풍산면 만세운동은 전성철(全聖哲)·김후성(金後性)·권영헌(權寧憲)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모두 의거 하루 전인 3월 23일 안동면(安東面)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이었다. 이들 중 김후성과 권영헌은 풍산면 출신으로 만세운동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자신의 마을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풍산시장을 장소로 택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4일 오후 3시 20분 전성철·김후성·권영헌 등은 기독교도 30여 명과 함께 풍산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에게는 김후성의 동생 김후근(金厚根)이 유동붕(柳東鵬)으로부터 가져온 격문(檄文)과 태극기가 있었다. 주도자들은 격문과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현장에서 이들의 만세소리를 듣고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만세시위를 알게 된 일제는 헌병수비대를 급파하였다. 수비대는 무력으로 시위 군중들을 강제로 해산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주동자 전성철·김후성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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