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殷杓
殷杓1897. 7. 20 ~ 1974. 4.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용인군 원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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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7월 20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맹리(孟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1일 용인군 원삼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원삼면 만세시위는 학생들과 지역 유지들이 각각 계획했는데, 지역 유지를 중심으로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같은 지역의 이용환(李容煥), 사암리(沙岩里)의 김은수(金殷秀)·안명옥(安明玉)·박제민(朴濟敏)·박제정(朴濟楨)·김창연(金昌淵), 좌항리(佐恒里)의 김영달(金永達)·김성남(金性男)·황경준(黃敬俊)·박제원(朴濟遠) 등과 함께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서울로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체재하던 중 3월 1일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이들과 함께 원삼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또 하나의 만세운동 계획은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의 재학생으로 이미 일본 도쿄(東京)에서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죽능리(竹陵里)의 오의선(吳義善)과 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생으로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좌항리의 이봉현(李鳳鉉) 등 학생들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각각 독자적으로 준비되던 두 방향의 만세운동은 서로 동지를 규합하는 과정에서 하나로 통일되었다. 이들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의 거사일을 3월 21일로 결정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1일 새벽 안명옥·김은수·이인하 등과 함께 원삼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이인하와 함께 주민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새벽 3시부터 오의선·황경준·이용환·김성남 등의 선창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외치며 면사무소 소재지인 원삼면의 곳곳을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이 곧바로 출동하여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강제 해산키고, 만세시위 주동 인물들을 강제 연행하였다. 이때 여러 이용환·김성남·김영달·김창연 등 여러 주도자와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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