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龍和
和1879. 12. 24 ~ 1919. 3.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양주군 광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79년 12월 24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광적면(廣積面) 효촌리(孝村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운경(雲京)이다. 1919년 3월 28일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佳納里)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양주군 광적면에서는 1919년 3월 초부터 면소재지인 가납리에 만세운동 관련 소식이 전달되고, 만세시위를 벌이자는 사발통문이 유포되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었다. 효촌리의 김진성(金辰成)·백남식(白南軾) 등과 함께 광적면 지역에서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양주군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지자, 3월 28일 오전 9시에 효촌리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또한 마을 주민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리고 독립시위 계획을 전달하는 등 거사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아울러 일장기를 변조하여 태극기도 만들었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는 달리 3월 28일 아침 효촌리의 한 민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마을 사람들이 화재 진압에 동원되면서 만세시위는 오후로 미루어졌다. 오후가 되자 김진성·백남식과 함께 주민들을 이끌고 10리 정도 떨어진 가납리로 가서 만세를 불렀다. 마침 그곳에서는 광적면과 백석면(白石面)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인 후 해산하고 있었다. 효촌리 시위대가 도착하자 흩어지려던 참가자들은 재집결하였고, 이들은 추교시장(楸橋市場)에 모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대의 규모는 9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자 의정부(議政府)에서 급파된 헌병 5명과 보조원 노호연(盧浩然), 광적면장 이하용(李河鎔)이 도착하였다. 헌병들이 도착하여 주도자를 찾자, 김우규(金宇圭)·한춘석(韓春錫)과 함께 시위대 앞으로 나갔다. 뒤이어 헌병이 시위의 중단을 명령하자, “삼천리 국토를 강탈했음에도 조국 독립을 위해 부르는 만세를 멈추려 하는 일은 적반하장이다”라고 헌병을 꾸짖으면서 규탄하였다. 이에 분위기가 다소 험악해지자 면장 이하용이 도망쳤고, 이를 본 시위대가 헌병들과 이하용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러자 헌병들은 백여 보 정도 후퇴를 하다가, 깃발을 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이러한 일제 헌병의 대응으로 인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약 40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결국 오후 6시 무렵 시위대는 해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일제 헌병의 폭력적인 진압 과정에서 선두에 서 있던 김진성·백남식과 함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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