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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甲

承甲

187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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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承甲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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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산(高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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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노원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동하면(雲東下面, 현 전북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金塘里) 출신이다. 1910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34세로 기록되어 있어,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 노원섭(盧元燮) 의병부대에 참여해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1월 전북 고산군수(高山郡守) 김규현(金奎鉉)이 결세(結稅)와 호세(戶稅)를 백동화(白銅貨)로 거두라는 중앙 정부의 훈령을 무시하고 엽전 징수를 강요하자, 군민 40여 명과 함께 이를 거부하고 정부에 군수의 전횡과 세금 늑탈 등을 고소하였다. 이때 군민들과 함께 경천주점에 모여 회의를 거친 후, 군수의 면직을 탄원하는 탄원서를 써서 내부(內部)에 진정하였다. 군민을 대표하여 주도적으로 군수의 전횡을 폭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관찰사의 조사에 의해 군수 김규면이 면직되었고, 이 사건은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에 보도되어 널리 알려졌다. 이처럼 평소 의기와 기개를 가진 인물로서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노원섭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노원섭은 500여 명의 이끌고 금산(錦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고, 이후 충남 공주 용당(龍堂), 전북 무주(茂朱)·진산(鎭山, 현 충청남도 금산군)·고산 등의 지역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7년 말부터 일본군 수비대의 토벌을 피하기 위해 점차 소규모 부대로 분리되어 지리적 이점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할 때, 노원섭 의병부대는 충남과 전북을 연결하는 험준한 대둔산(大芚山)을 주요 거점으로 삼고 활동하였다. 그래서 당시 고산주재 순경이 일본인을 습격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노원섭 의병부대의 대원을 체포할 정도였다. 이 무렵인 1907년 11월 12일부터 18일까지 노원섭 의병부대에 참여해 항일투쟁에 동참하였다. 총과 칼 등으로 무장한 부대원 30여 명과 함께 전북 용담군(龍潭郡, 현 전라북도 진안군)과 고향인 고산군 일대를 돌아다니며 활동하였다. 아울러 대둔산을 거점으로 한 노원섭 의병부대의 유격전을 돕다가 붙잡힌 것으로 보인다. 이 일로 1910년 3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1910년 8월 29일 칙령 제325호 대사령(大赦令)에 의거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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