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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元弼

元弼

1884. 4. 30 ~ 19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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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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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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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함안군 군북면(3.2)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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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884년 4월 30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동촌리(東村里)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익힌 향촌의 유림이었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장례에 이어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경남 함안군 읍내에서도 장날에 맞춰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군북면의 만세운동은 조용대(趙鏞大)의 사랑채에 모인 조상규(趙相奎)·조경식(趙璟植) 등이 함안읍(咸安邑)에 이은 군북면의 만세시위를 도모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외종형 이경흠(李卿欽)을 통해 전해 듣고 이에 찬성하였다. 그리고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한 태극기를 제작하고 동지를 규합하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군북면에 장이 선 3월 20일 오전 9시 동촌리의 신창학교에서 50명의 학생들이 먼저 만세시위에 나서자 군북 장터의 군중 역시 이에 대대적으로 호응하였다. 군중의 시위가 시작되자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하고 만세를 독려하며 행렬의 선두에 섰다. 오후 5시 시위대의 규모가 5,000여 명에 달하자 일제 군경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발포가 있었다. 이에 흥분한 군중은 돌을 던져 주재소의 기물을 파괴하며 저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헌병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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