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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容憲

容憲

1880. 12. 13 ~ 1934.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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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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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榮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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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영주군 하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0년 12월 13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하리면(下里面) 금곡동(金谷洞, 현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영주군 하리면 은산동(殷山洞)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영주군 하리면 만세운동은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권창수(權昌銖)·이재덕(李宰德)·채동진(蔡東鎭)·이헌호(李軒頀)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때 이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중 권창수는 농사 외에도 어물장사를 하면서 인근 시장 등지를 오가며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만세운동의 전국적인 확산과 3월 21일 영주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자극을 받은 이들은 구체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게 되었다. 만세운동의 실행은 은산동 장날이 서는 4월 4일로 정하였다. 금곡동이 아닌 은산동으로 결정한 것은 인근에서 열리는 장날 중에서 규모가 큰 장터로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거사 당일인 4월 4일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 은산시장에 있는 황병석(黃炳奭)의 가게에 모였다. 저녁 6시 가게에서 음식을 먹은 후 이들은 실내에서 ‘한국독립만세’를 외쳤고, 이어 가게를 나와 시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소리에 장터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다시 한 번 군중을 향하여 만세를 선창하였다. 군중도 이에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점점 시위 규모가 늘어나자 힘을 얻은 주도자들은 더 나아가 “일본군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로 가서 격파하자”라고 외쳤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헌병은 주도자 다섯 명을 모두 체포하였다. 이들이 체포된 것을 본 군중은 분노하며 장터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일제 헌병이 총검으로 군중들을 위협하여 해산시키면서 만세시위는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였다. 1919년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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