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昇淵
昇淵1861. 10. 4 ~ 1933. 3.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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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1년 10월 4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칠곡면(漆谷面) 자지리(紫芝里, 현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서 이이장(李以璋)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응오(應五)이고 호는 지강(芝岡)이다. 이후 이이형(李以珩)과 단양 우씨(丹陽禹氏)의 양자가 되었다. 1913~1915년 박경종(朴慶鍾)의 권유로 중국 서간도에 세워진 무관학교의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이시영(李始榮)·이회영(李會英) 형제와 이상룡(李相龍) 등은 재산을 정리하고 가족 전체와 함께 중국 서간도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롭게 독립운동을 도모하였다. 박경종 역시 지역에서 학교를 운영하며 애국계몽운동에 힘쓰다가 경술국치 이후 온 가족을 이끌고 1911년 (음)5월 서간도로 이주하였다. 박경종은 퉁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 이시영 집에서 모임을 갖고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설립에 참여하였고 무관학교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군자금 모집활동에 나섰다. 1913년 7월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양야리면(陽也里面, 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감성리(柑城里)에서 정해일(鄭海日)과 함께 비밀리에 입국한 박경종을 만나 서간도에서 독립전쟁을 준비 중인 무관학교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병사 양성에 필요한 기금 20만 원을 함께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11월 대구(大邱)에서 개최된 제1회 경상북도 물산공진회를 이용하여 이종태(李鍾泰) 등 수십 명의 동지를 규합해 자금 모집 방법을 논의하였다. 군자금 모집은 쉽지 않았고 지지부진한 모금 활동으로 1914년 8~9월 박경종·정해일과 다시 모임을 가졌다. 박경종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일본이 중국 칭다오(靑島)로 출병하여 전쟁에 참가하면 독립선언 후 응전할 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군자금 모집에 힘낼 것을 촉구하였다. 군자금 모집에 힘썼으나 이후에도 상황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군자금 모집 활동 중에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붙잡혔다. 1915년 8월 18일 경성지방법원 예심 결정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9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그해 11월 징역 6월 24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다가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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