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永鳳
永鳳1889. 7. 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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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1889년 7월 3일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입석면(立石面) 용림리(龍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광선(李光宣)이며, 직업은 미곡상이었다. 1919년 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배포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 모집원인 강태동(姜泰東)·이정규(李丁圭)는 국내로 들여온 독립운동 관련 선전문서를 황종화(黃鍾和)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황종화가 보관하고 있던 선전문서는 「적의 관공리(官公吏)가 된 동포에게」라는 제목의 문서 약 1,500장, 「포고(布告) 제1호 남녀 학생에게」라는 제목의 문서 약 1,000장, 「포고 제2호 상업에 종사하는 동포에게」라는 제목의 문서 약 1,000매 등이었다. 「적의 관공리(官公吏)가 된 동포에게」라는 문서는 일제의 관공서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매국노가 되지 말고 속히 물러나라는 내용이었으며, 「포고(布告) 제1호 남녀 학생에게」라는 문서는 학생들이 분기하여 독립에 대한 결심을 굳게 하고 만세를 합창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포고 제2호 상업에 종사하는 동포에게」라는 문서는 장기간 시장을 파하여 독립과 자유를 요구하고 민족의 의사가 강렬한 것임을 보여주자는 내용이었다. 황종화·이운형(李運衡)·김규열(金圭烈)과 함께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이 문서의 배포 방법을 협의하였다. 그리고 논의 결과 평안도 지역의 문서 배포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2일부터 28일 사이 평안도의 도청과 군청, 각 군의 공립보통학교, 각 재판소 등의 직원과 면장 앞으로 문서를 보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노출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0년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2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1921년 1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2년 7월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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