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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永先

永先

1864 ~ 1910.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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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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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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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윤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구암면(龜岩面) 금상동(金相洞) 출신이다. 190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46세로 기록되어 있어,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8년 (음)7월 2일 의병을 일으킨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시킴에 따라 이를 계기로 의병투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항일투쟁의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의병에 참여하는 계층도 더욱 다양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호남지역 의병은 여타 지역보다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 1908년 임순호(任詢鎬) 등과 함께 순창, 임실(任實), 담양(潭陽)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한 양윤숙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2일 이후 양민으로 가장해 일제 군경의 동향을 탐색하고, 당시 순창군 구암면 금상동 회문산(回文山)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던 양윤숙 의병부대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며 의병 활동을 도왔다. 이 일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11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판결문에는 1910년 8월 칙령 제325호 대사령(大赦令)에 의거해 사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같은 해 1월 23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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