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載根
載根1893. 2. 29 ~ 1956. 2.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운남강무당군관학교
- · 대한통의부
- · 정의부
- · ML파
- · 조선인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3년 2월 29일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문산면(文山面) 원성리(遠星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희연(李希淵)이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만주로 이주하여 처음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정의부(正義府) 등 만주지역 독립군단에서 간부 및 군사교관으로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는 장제스(蔣介石) 및 중국 군벌들과 협상하여 학생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하거나 중국 측과 교섭한 독립운동가들을 중견 장교로 양성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에 신규식(申圭植)은 운난(雲南)의 중국군벌 탕지야오(唐繼堯)와 협상하여 이범석(李範奭) 등을 운남강무당군관학교(雲南講武堂軍官學校)에 먼저 유학시켰는데, 1921년에 이준식(李俊植)·김관오(金冠五)·안경근(安敬根) 등 10여 명과 함께 유학하면서 군관으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1922년에는 만주로 돌아와 펑톈성(奉天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남만주 일대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을 목적으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등이 통합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이때 여기에 가입하고 사령부 배속장교로 임명되어 경리행정에 종사하였다. 한편 만주로 이주한 한국인들은 외지에서의 농업협동과 상호공조를 위해 기초 사회조직을 발전시켰는데, 이때 류허현 삼원보에 촌공회(村公會)를 개설하고 부속 소학교를 개설하여 아동들의 민족교육에 힘썼으며, 1924년 10월경에는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의 총회에 참가하여 민족적 사회운동가들과 회합하는 등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24년 11월 통의부가 정의부로 개편되었는데, 1925년경에 정의부 사령부(司令部)의 연락장교로 복무하였다. 1926년에는 류허현 삼원보에 위치한 동명학교(東明學校)의 교관으로 근무하였고, 1927년에는 군사교재로서 『군사학』을 편찬·보급하였다. 이후 점차 사상적 급진화가 심화되어, 정의부가 신민부(新民府) 및 참의부 일부 계열과 합류하여 국민부로 계승·발전하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보다 급진적인 공산당·좌익계열의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부와 공산주의자 및 재만공산주의 ML파가 결별한 이후로 상호공격이 심화되는 와중에, 국민부 명의로 ML파를 규탄하는 1929년 2월 5일의 선포문에 “김영제(金永濟), 김우범(金宇範) 등의 주구 수괴를 박멸하라!”라는 문구에서 이명인 이희연이 등장함으로써, ML계 좌익 민족운동에 주요 인물로 투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과 괴뢰 만주국 수립 이후로 만주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활동이 어려워지자,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이주하여 류허현 삼원보에 마련하였던 촌공회를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로 개칭하고 최재명(崔在明)을 임시회장으로 추대하였다. 1933년 일본군의 열하침공 시기에는 다시 류허현 일대에서 독립공작에 힘썼다. 1934년경부터는 베이징 일대에서 독립운동 및 첩보공작에 종사하다가 1945년 독립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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