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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應洙

應洙

1896 ~ 192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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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應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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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명천(明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명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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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하월면(下月面) 여진동(汝津洞) 출신이다. 1922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26세로 기록되어 있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며 중국으로 건너가,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 소백초구(小百草溝) 송림동(松林洞)에 거주하였다.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에 가입한 이후 밀정처단과 무기 운반 등의 활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 9월 중순경 동지인 장남환(張南煥)으로부터 왕칭현 소백초구 상촌(上村)의 이화여(李化汝) 집에 머물고 있던, 잡화상 박창근(朴昌根)·이재준(李在俊)이 일제 관헌의 밀정이기 때문에 처단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이재준·박창근을 살려두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달 17일 밤 석기호(石基浩)·이억준(李億俊)·장남환·장기영(張基永) 등과 이재준·박창근을 붙잡아 포박한 후, 부근인 양반골로 데리고 가서 처단하였다. 이튿날인 18일 소백초구 송림동(松林洞)으로 독립군 활동 관련 장비를 운반하였고, 이후에도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0월 옌지현 국자가(局子街) 영사관에 붙잡혔다가 방면되었으나, 이후 다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21년 10월 1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2년 1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3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그 해 4월 15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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