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致模
致模1898. 7. 19 ~ 1960. 12.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강동금융조합
- · 농민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강동경찰서 폭탄투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898년 7월 19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강동면(江東面) 아달리(阿達里)에서 태어났다. 강동 사립학교를 마치고 강동금융조합(江東金融組合)의 소사(小使)로 일하였다. 1919년 강동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 8월 이환욱(李桓旭)이 군자금을 거두어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하자는 제안에 이득수(李得洙,李竹水)·이근배(李根培)·이성규(李成奎)·이석돈(李錫敦) 등 10여 명의 동지와 함께 동참하였다. 이어 실행기관으로 비밀결사 농민단(農民團)을 조직하였다. 강동지역의 농민과 탄광부를 중심으로 결성된 농민단은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단원들은 논의를 거쳐 일제 경찰관서에 폭탄을 던져 민심을 격동시키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군자금을 거두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구체적인 계획으로 먼저 강동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강동군 내의 원탄(元灘)·고천(高泉) 경찰관주재소도 공격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작전 수행을 위한 폭탄 제조는 이근배와 이환욱이 담당하고, 자신은 이성규와 함께 직접 폭탄투척의 임무를 맡기로 협의하였다. 이에 따라 원탄면 송오리(松塢里) 탄광의 광부인 최인택(崔仁澤)을 단원으로 규합하였다. 최인택은 1개월 동안 작업 중 채집한 다이너마이트와 도화선을 이근배와 이환욱에게 전하였다. 이를 전달받은 이근배와 이환욱이 원통형 폭탄 1개를 제조하였으며, 실제 폭탄 투척의 거사를 맡기로 계획을 세웠다. 거사 계획에 따라 1920년 9월 18일 밤 9시경, 이성규와 함께 평남 강동경찰서 청사에 폭탄을 투척하여 유리창 일부가 깨지고, 일제 경찰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어 강동군 내 원탄과 고천주재소 폭파를 시도하였으나 화약의 준비가 계획처럼 마무리되지 못해 실패하였다. 투탄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단원들은 당초 계획대로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여 9월 30일 밤에 이득수·이근배·최인택·최선식(崔善植)·서달선(徐達善) 등이 강동군 원탄면 삼청리의 자산가 이관식(李寬植)에게 군자금 142원을 모금하였다. 10월 9일 원탄면 흑룡리의 서상목(徐相穆)을 찾아가 임시정부 특파원을 자칭하며 군자금 기부를 요구하여 200여 원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동경찰서 폭파사건 직후 일제 경찰은 범인을 체포하고자 현상금 3,000원을 걸고 수사망을 폈다. 1920년 10월 12일 평양경찰서 형사들에게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최종적으로 무기형을 받고 11년 동안 옥고를 겪다가 1930년에 가출옥되었다. 이후 천도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다. 1945년 10월 천도교 강동군 삼등면 종리사(宗里師)와 1947년 천도교 지방도사(地方道師)가 되어 교세확장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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