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應烈
應1914. 10. 16 ~ 1993. 1.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6) 1914년 10월 16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염치면(鹽峙面) 백암리(白岩里)에서 이종옥(李種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명으로 창농을 사용하였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14대 종손이며, 조부 이문영(李文永)은 무과에 급제하여 참상선전관(參上宣傳官)을 지내고 덕녕군(德寧君)에 봉해졌다. 부친 이종욱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으며, 태을교(太乙敎)에 입교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부친으로부터 “현재 조선의 상태로서는 조선인은 무기도 없고 모두 일본화하고 있으므로 도저히 실현이 어렵다. 다만, 만약 조선인 전체가 일치단결하여 조선인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조선도 독립할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듣고 항일의식을 다졌다. 또한 평소 경제학의 기초 이론, 이코노미스트, 동양 경제 등 외국 신문과 책을 읽으며 학습하였다. 서울로 유학하여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근무하였다. 1941년 7월 서울 전농정(典農町) 소재 하숙집에서 임정호(任程鎬)·권용옥(權容玉) 등에게 “이순신의 종손으로서 임진왜란 때 조선 육해군 대장으로서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격파하였는데 과거에 일본인과 조선인은 서로 전쟁을 한 역사적 사실로 보아 내선일체는 지난하고, 현재 조선의 상태로는 독립할 수 없지만 언젠가 때가 오면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인은 확실한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라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하숙집 마루 밑에 벗어둔 일본식 나막신을 보고 일본식 복장을 착용하는 한국인을 비판하였다. 이 일로 1942년 4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43년 2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광복 후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에서 활동하였다. 1974년 『난중일기』를 국역하여 출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